프랭크 란츠, 게임 형식주의

최근 프랭크 란츠를 중심으로 한 게임 형식주의 논쟁에 대해, 란츠가 논의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 했던 부분들과 함께 자신의 주장과 의도를 더 확실하게 정리해서 올렸다. 그 중 일부 발췌:

“내가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할 때 말한 것은, 스토리와 주제가 있는 게임은 지적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고 없는 게임(체스와 테트리스 같은)은 말 그대로 ‘바보 같다’고 여기는 태도였다.

우리 분야 안에서, 특히 진보적인 디자이너들과 비평가들 중에서 이런 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특히 우리 분야 밖의 사람들에게 게임은 거의 스토리를 전하고 구체적인 주제를 표현하는 능력이 발전하는 모습에서만 그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건 좋은 일이다! 나는 게임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야기할 때 이런 발전을 항상 언급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스토리 패권’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다. 나는 게임이 발전하고 번영하길 바라고 이것이 주된 기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안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비디오게임이 서사와 캐릭터, 설정, 주제 그리고 선택과 행위, 시스템, 장치를 혼합한 바그너스러운 총체 예술로서 지금 지닌 힘과 미래의 잠재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학장님께 게임에 대해 말할 때 나는 학장님이 스트리트 파이터를 이해하길 바란다. 전도유망한 학생의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부모님들이 자녀가 하루 종일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길 바란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나는 드롭7이 수백 만 시간의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인지 알고 싶다.

그게 내 관점이다. 나는 서사를 무시하거나 제거하거나 그 중요성을 축소하고 싶지 않다. 그 중요성은 의문의 여지 없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혀 있다. 나는 서사가 아닌 부분을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가 밝혀내고 싶다. 좋든 싫든 실제로 많은 게임에서 거의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카운터스트라이크가 표현적 특성 때문 만이 아니라 표현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고 지적 탐구와 논의의 가치가 있는 문화의 중요한 산물이라는 점은 논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내가 논증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게임들과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 그것들을 일등석에 태워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다만 놓고 가고 싶지 않다.

나는 탐험할 세계, 서사적 경험, 주제를 전하는 매체로서 게임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더 모호하면서 발견하고 알아보기 어려운 다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싶다. 시스테믹하거나 절차적인 특성을 한 편에 두고 미학적 특성을 다른 한 편에 두어 구별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럽고 만연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경향에 대항하고 싶은 것이다. 시스테믹/절차적 특성 자체가 미학일 수 있는 방식을 조명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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