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란츠, 디자인에 반하여

프랭크 란츠의 디자인에 반하여(Against Design) 중에서 후반부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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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일종의 합리성, 명료하게 규정된 문제를 파악하고 알려진 기법을 적용해 해결하는 능력을 내포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내린 정의의 활용성과 기법의 힘이 과대평가된다고 생각한다. 수학 모델의 예측 능력을 과신하는 경제학자들처럼 우리는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 특성들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고 본다.

심지어 디자이너를 상징하는 똑똑하고, 자신 있고, 정교하고, 스타일 있고, 지적인 이미지에도 회의감이 든다. 우리가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할 능력을 대하는 낭만적 환영을 대변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노래는 디자인되지 않는다. 회화는 디자인되지 않는다. 시는 디자인되지 않는다.

끔찍한 이야기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규정할 수도,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 우리가 나무와 협상하고 화산에 소리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디자인보다 이쪽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진실은 그 사이에 자리한다. 그 희미한 옆모습에 현혹될 만큼이나 가깝고, 우리의 디자인 패턴과 교재, 강의 계획, 영리한 블로그 글의 손아귀에 영원히 잡히지 않을 만큼 멀다.

확립된 체계를 갖추고 전문 분야로서 게임 디자인을 규정하는 공통 원칙을 만드는 것의 가치는 인정한다. 하지만 또 우리가 하는 일을 전문 체계로 규정하고 형식화하는 노력 속에서 우리가 비롯된 역사를 잊어버리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만든 게임들의 유산, 아마추어들이 만든 게임들, 딜레탕트들이 만든, 수학자들이, 어머니들, 과학자들, 체육 교사들, 목동들, 발명가들, 철학자들, 괴짜와 기인들이 만든 게임들.

그 전통을 존중하는 점에서 나는 과도하게 명료한 “디자인”이라는 단어 대신 게임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동사를 제안하고 싶다. 발명, 발견, 구성, 쓰기, 찾기, 키우기, 이행, 짓기, 받치기, 파악하기, 복제하기, 재조립하기, 발굴하기, 보존하기.

NYU 게임 센터에서 우리는 이런 문제에 매일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인을 ‘자신이 만드는 게임과 플레이하는 사람이 교차할 부분, 게임이 세상과 교차할 부분을 인식하면서 비전이 주도하여 창조적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넓게 규정한다. 우리는 비판적 리터러시와 디자인 원칙을 가르치지만 미지를 위한 공간 역시 남겨 놓는다. 이 관점에서 게임 디자인은 규칙과 지침의 적용보다는 신성한 영감과 노력, 좋은 취향이 종잡을 수 없이 충돌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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