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에 죽음을 – 그렉 코스키안 (2003)

껍질인간 님이 방금 올린 글(“PC 게임의 역사 1“)과 그 댓글들을 읽고 있자니 그렉 코스티키안이 2003년 2월 3일 블로그에 올린 이 글 “‘비디오게임’에 죽음을“(Death to “Videogames”)이 문득 생각났다.

현재에도 디지털 게임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는 ‘비디오게임’과 게임의 종류별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을 보여주면서 무심코 사용하는 용어의 적절성, 그런 용어에 이론을 때려 맞추는 일에 의문을 던질 기회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번역해봤다.


최근 크리스 크로포드 씨가 쓰는 책의 기술 리뷰를 하는 중에 그 사람이 쓰는 비디오게임(videogame)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 사람은 이 용어의 의미를 “콘솔 게임”으로 정의했다.

확실히 비디오게임이란 용어는 원래 그렇게 사용된 게 아니었다. 온갖 바와 아케이드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게임들, 전자기기에 의존해서 화면에 이미지를 띄우는 게임들–옛날의 전통적인 핀볼 게임들과 아케이드에 설치된 놀이기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을 가리키면서 탄생한 용어였다. 비디오를 사용하니까 그 게임들은 달랐다. 혹은 달라 보였다. 그것들이 “비디오 게임”(video game)이었고 동사 두 개로 된 모든 영어 용어가 그렇듯 결국엔 하나로 붙어 “비디오게임”이 되었다.

최초의 가정용 게임 장치–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퐁보다 앞서기 때문에 사실 최초는 아니었지만, 언론들의 기억은 덧없는 것이다–가 나타났을 때 거기서 돌아가는 게임들 역시 비디오게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심지어 퐁 이전에도 대학 컴퓨터실 사람들이 자기와 친구들끼리 즐기려고 조그마한 게임들을 프로그래밍했었는데, 대체로 이런 게임들은 텔레타이프나 글자만 출력할 수 있는 모니터가 붙어있는 장치들에서 돌아갔다. 이전의 보드 및 카드 게임들과 구분되는 이 게임들의 특징, 컴퓨터에서 돌아간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이크로컴퓨터”(즉, 가정용 컴퓨터)로 나온 초기 게임들 역시 대체로 텍스트 기반이었기에–일부는 그래픽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지만–적어도 한 동안은 “컴퓨터 게임”이라고 불렸다.

여러 해 동안 “비디오게임”과 “컴퓨터 게임”은 서로 상당히 다른 분야로 구분되어 있었다. 심지어 개발 커뮤니티조차도 서로 간에 별 교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아타리 몰락 이후 컴퓨터 게이밍(그리고 크게 줄어든 아케이드)만이 디지털 게임의 전부가 되었고, 1세대 컴퓨터 게임 개발자들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닌텐도가 아타리가 끝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콘솔 게이밍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가정용 PC의 그래픽 기능이 좋아지면서 콘솔과 PC의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둘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예를 들어 PC에서는 플랫포머 게임이 많지 않고, 전략 게임들은 콘솔 컨트롤러로 잘 되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PS2, 엑스박스, 게임큐브, PC 네 개의 주된 가정용 게임 플랫폼이 존재한다.

“비디오게임”은 지배적인 문화를 등에 업고 점점 모든 디지털 게임을 포괄하는 용어가 된다. GTA 3는 비디오게임이다. 퀘이크 아레나도 비디오게임이다.

이상하게도 학계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디지털 게임을 보는 학자들은 디지털 게임과 디지털이 아닌 게임들을 구분하는 요인이 시각의 활용이 아닌 프로세서임을 인식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비디오게임”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컴퓨터 게임”이라는 용어로 콘솔과 PC 게임 양쪽을 칭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업계 안에서도 “비디오게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건 비디오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컷씬을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비디오를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즉석에서 렌더링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다, 그 이미지조차 게임의 표면, 인터페이스, 솜사탕이다. 게임의 본질, 게임의 핵심은 그 밑에 깔린 코드 안에 있다. 이 게임들은 자기 테이프가 아니라 프로세서 위에서 돌아간다. 알고리듬과 상호작용성이 게임이다.

업계는 대신 플랫폼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콘솔 게임들이 있고, PC 게임들이 있다. 그리고 PC는 (물론 그 고유의 특성이 있지만) 그저 또 하나의 플랫폼일 뿐이다.

“비디오게임”은 죽어 마땅한 용어다. 게임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용어다. 물론 죽지 않을 것이다. 지배적인 문화에 너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학계와 업계가 맞다. 비디오는 디지털 게임을 정의하지 않는다. 예전 비디오게임들이 시각적으로 조악했음을 생각하면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이 그 게임들을 이야기하는 데 언급해야 하는 한 가지 요소로 “비디오”를 생각했다는 점을 믿을 수 없다. 물론 지배적인 문화는 한 번도 게임을 게임으로서 이해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게임에 애정이 있다면 그 단어를 어휘에서 지워버려라. 우리는 게임을 한다. 디지털 게임은 종이 게임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게임은 어떤 방식으로도 구분해볼 수 있다. 돌아가는 플랫폼으로, 장르로, 비주얼 스타일로, 대상 인구로, 예술적 의도로, 기원 문화로, 매체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중 어떤 분류로도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잘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구분하면서 사용하는 용어에서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게임”이란 용어에는 그런 존엄이 없다. 그래픽이 있는 게임들(예: 퐁)과 없는 게임들(예: 조크), 혹은 그래픽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게임들(예: 리스크) 사이에 조악하고 허술한 경계선을 그릴 뿐이다. 퐁이 파이널 판타지 X보다는 탁구와 더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이상한 경계선이다.

우리가 게임을 이해하려면 의미 있게 구분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비디오게임”은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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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혁명: 지난 10년의 좋은 시절, 다가오는 어두운 미래

베테랑 게임 디자이너 그렉 코스티키안의 2014년 GDC 랜트 세션 발표.

(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


10년 전 PS3와 엑스박스 360가 런칭할 때, 저는 두 제조업체의 부추김을 무시하라고 했었습니다. 그 기기들은 우리를 황금기로 인도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게임의 혁신을 묻는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하고 있었다. 예산이 더욱 더 높아지고 팀이 더욱 더 커지는 장기적인 경향은 계속될 것이고, 업계에서 마지막 한 줌의 창조성을 쥐어 짜낼 때까지 독창적인 타이틀은 더욱 더 적어질 것이고, 수익은 줄어들 것이며, 결국 구조 전체가 기울어지며 시스템의 명백한 모순 아래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저는 욕망, 취향의 결핍, 퍼블리셔가 우리를 유감스러운 상황으로 이끌었다고 외쳐 비난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게임의 혁신이 마르도록 빨았던 독사, AAA 시스템의 단말마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불가피한 것이었다지만 그 전환 과정에서 고통 받은 모든 개발자들에게 유감을 전합니다.

저는 혁명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경탄스럽게도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혁명을 목격했습니다. 온라인 배급과 시스템에 거스를 준비가 된 개발자들이 인디 혁명을 이루어내며 컴퓨터 게임 초창기 이래 보지 못했던 창조성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인 소셜과 모바일은 완전히 새로운 채널을 열어주었고 완전히 새로운 게임 스타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지난 10년은 역사상 게임 개발자가 되기에 가장 흥미롭고 전망이 좋은 시기였습니다. 제가 말하는 역사는 같은 기준에서 흥미로운 시절이었던 게임 업계의 탄생과 테이블톱 하비 게임의 부흥도 포함한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끝나가고 있습니다. 벽이 다시 한 번 닫히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날들은 가혹할 겁니다. 아타리 몰락 이래로 본 적이 없는 돌풍이 불어닥칠 겁니다. 혁신은 점점 더 줄어들 겁니다. 앞으로 10년, 우리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비난할 대상은 욕망, 그리고 취향의 결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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